내 아이 부자로 키우고 싶다~
경제 마인드도 일찌감치 조기교육?
2000년 출간된 후 일명 ‘부자 아빠’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던 책 <부자 아빠 가난
한 아빠>. 이 책이 나온 후 과연 자신은 부자 아빠인가, 가난한 아빠인가를 놓고 애꿎은
자학을 했을 아빠들이 제법 많았다.
자신을 위해 부자가 돼야 하는 것은 이제 너무 당연하다 못해 진부해진 이야기. 여기
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제는 자녀가 어렸을 때부터 부에 대한 개념을 확실히 심어주고, 이를
통해 부자 아이로 자라게 하고 싶다는 게 요즘 부모들의 마음이다.
그런 추세를 반영하듯 최근 들어 새로 쏟아져 나오는 아동서적 중에는 ‘부’나 ‘경제’
를 주제로 하는 책이 부쩍 눈에 띤다. 전에는 이런 책이 나오더라도 대부분이 절약, 저축에
관한 ‘건전한’ 얘기가 주를 이뤘던 게 사실. 하지만 지금은 구체적으로, 그리고 직접적으로
돈을 모으고 관리하는 재테크 노하우를 소개하는 책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제목부터도
돈, 부자, 가난뱅이, 백만장자 등 자극적인 게 대부분이다.
한글, 영어, 각종 예체능에 대한 조기교육에서 더 나아가 요즘 아이들은 경제감각을 익히
는 데서도 일찌감치 조기교육을 받고 있는 셈이다. 하긴 요즘은 취학 전부터 자기 명의의
통장을 만들고, 고등학생만 돼도 주식투자를 하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고 하니 무리도 아닐 듯.
대표적인 게 ‘경제동화’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 열두 살 어린 소녀의 재테크 이야기 <열두
살에 부자가 된 키라>. 이 책은 2001년에 첫 출간됐지만 지금까지도 그 인기가 식을 줄 모
른다. 지난 9월 첫째 주만 해도 어린이 도서 베스트셀러 분야에서 6위를 차지했을 정도니 말이다.
이 책은 아이들에게 거부감이 없도록 동화의 형식을 빌려 돈과 경제의 개념을 알기 쉽게 설
명하고 있다. 무리하게 집을 사서 돈에 쪼들리는 부모님을 볼 때마다 속상해하는 어린 주
인공. 이 책이 권하는 부자 되기 노하우는 ‘부자가 되고 싶은 열 가지 이유를 적어라’ ‘매일
성공일기를 써라’ 등. 목차만 봐서는 성인용 재테크 서적과 크게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밖에도 이와 비슷한 류의 책은 서점에 가면 쉽게 찾을 수 있다. 내용도 대개가 대동소이
해서 용돈을 제대로 관리하는 방법, 미래의 부자를 준비하는 방법, 돈의 흐름 이해하기, 효과적
으로 돈 불리기, 세계적인 백만장자들의 돈 모으기 비결 엿보기 등이 주를 이룬다.
이런 흐름을 일찌감치 간파하고 <10원으로 배우는 경제이야기>를 출판했던 영교출판사는
이에 대해 “실용주의 사고가 잘 정착돼 있는 미국과 영국 등 선진국뿐 아니라 유럽 여러 나
라에서조차 아이들에 대한 조기 경제교육에 매우 관심이 높다”고 얘기한다. 이유는 어릴 때
형성된 경제의식이 일생 동안 커다란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라고.
영교 측은 이의 증거로 “세계적으로 부를 이룩한 많은 기업가들, 예를 들어 일본의 마쓰
시타, 미국의 록펠러, 빌 게이츠 등의 전기를 보더라도 어릴 때 형성된 경제 마인드가 얼마
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옛 속담에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어떤 식으로
든 경제활동에서 벗어나서는 살 수 없는 만큼 어려서부터 올바른 경제습관을 익히는 것은
반드시 필요해 보인다. 최근 어린이 경제서적을 출판한 한 저자는 “정확하게 돈의 개념을
이해할 수 있는 여섯 살 때부터 용돈을 주고, 금융교육을 시키는 것이 좋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반면 왠지 씁쓸하고 우려스러운 마음이 든다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이에 대해 네 살 된 딸을
키우고 있는 서울의 한 주부는 “별로 좋지 않다”고 단언해서 얘기한다. 그녀 역시 돈을 쓰는
방법이나 돈의 소중함을 깨우치는 등 올바른 경제관념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는 동의한다.
하지만 최근 어른들 사이에서 불고 있는 부자 열풍이 아이들 사회에서까지 불고 있는 듯해
불편한 시각을 감출 수 없다는 것. “돈의 액수가 많아야 한다는 점에 초점이 맞춰져 있거나
모두 부자가 돼야 한다는 식의 경제교육은 문제가 있다”는 게 그녀의 설명이다.
한편 경제 전문가들은 가정에서 경제습관의 기본인 저축, 소비, 기부, 투자 등을 목적에 맞게
가르치라고 조언한다. 단순하게 심부름과 용돈을 연계시키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는 노동과
돈의 가치를 적절히 조화시켜야 한다는 것.
세상에서 가장 귀한 자신의 자녀가 경제적으로도 풍요롭게 살기를 바라는 것은 모든 부모의
한결같은 마음.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서는 전통적인 가치관의 영향 때문인지 돈에 대해 ‘대놓고’
얘기하는 것은 왠지 고상하지 못하게 생각돼 왔던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더욱이 그 대상이
아이들이라면 더욱 조심스러워지는 법. 자칫 무분별한 물질만능주의, 황금만능 사상에 빠질
까 염려해서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어쩌면 이중적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교육의 내용과 방법. 무조건 부를
이뤄야 한다거나 ‘부=선’으로 가르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나 돈에 대해 올바른 가치관을
형성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교육의 한 과정이다. 돈 자체의 소중함보다는 노동의 소중한
의미를 깨닫게 하는 것 역시 반드시 선행돼야 할 점이다.
강윤경 기자 | bookwor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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