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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은 '한류와 열애중'

한류(韓流)의 불길이 그치지 않고 있다. 베트남과 중화권에서 발원한 한류는 이제 일본은 물론이고 미국의 안방까지 넘볼 정도로 한국을 상징하는 최고의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2004 강릉 국제관광 민속제 개막식에서 베트남 유네스코 클럽팀이 개막 축하공연을 하고 있다

한류열풍의 현주소
베트남의 연예전문잡지인 '영화세계'(The Gioi dien anh) 호치민지사는 요즘 '엉뚱한' 전화 문의가 폭주하는 바람에 직원들이 좀처럼 자리를 비우지 못하는 실정이다.
최근 방영이 끝난 한국드라마 '겨울연가'의 남자주인공 배용준이 극 중에서 맨 목도리를 어 떻게 구입할 수 있는 지를 문의하는 전화가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무더운 날씨로 목도 리가 필요 없는 곳이지만 이를 찾는 팬들이 줄을 잇고 있는 상황이다.
역시 최근에 방영돼 폭발적인 인기를 끈 '천국의 계단'에 출연한 탤런트 권상우의 포스터를 구하지 못했다면서 추가 인쇄 여부를 문의하는 전화도 끊이지 않는다.
TV드라마 '불꽃', '의가형제' 등을 통해 탄탄한 팬층을 확보한 '산소 같은 여자' 이영애식 화장법은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는 이미 더 이상 새로운 뉴스가 아니다. 또 TV드라마 '올인'에 서 여자주인공으로 나온 탤런트 송혜교가 착용했던 시계, 목거리 같은 액서서리도 전국에 유 행되고 있다.
이는 베트남에서 매일 접할 수 있는 한류열풍의 한 예다. 지난 1996년부터 본격화된 베트남에 서의 한류열풍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거세지는 느낌이다.
한류열풍의 '전도사' 격인 TV방송 수는 전국채널인 중앙방송국(VTV), 하노이방송국, 호치민방 송국 등 40여개로 이들을 통해 매일 20여 편 이상의 한국드라마가 방영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 났다. 이는 전체의 40%로 방영시간대 역시 황금시간대인 정오, 오후 6시, 오후 9시에 집중돼 있다.
황금시간대에 한국드라마가 집중돼 있다 보니 당연히 광고수도 가장 많다. 미국이나 중국 등 다른 외화의 경우 광고가 3∼7개에 불과하지만 한국드라마는 방송을 전후해 평균 15개 광고를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VTV의 경우 '완전한 사랑', '니 멋대로 해라', '유리구두' 등이, 하노이방송국은 '요조숙녀,' ' 천년지애', 호치민방송국은 '그 여자네 집', '폭풍 속으로', '노란손수건' 등이 이미 상영되고 있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이미 상영이 끝났지만 시청자들의 요구로 다시 상영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작년에 방영된 '유리구두'의 경우 전체인구의 4분의1 가량인 2천만 명의 시선을 매주 3차 례씩 저녁 9∼11시에 집중시켜 거리에 사람이 없을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이 드라마는 작년 9월 한국을 방문한 판 반 카이 총리를 수행한 장?차관급 공식수행원들이 청 와대 공식 오찬석상에 초빙된 두 남녀 주인공의 사인을 받기 위해 경쟁을 벌일 정도로 인기를 확인해줬다.
드라마만큼은 뜨겁지 않지만 '엽기적인 그녀', '동갑내기 과외하기', '그녀를 믿지 마세요' 등 의 영화와 베이비 복스, 이정현, 코요테, 구창모 등 한국가수들이 부른 가요도 인기정상 괘도로 질주하고 있는 상황이다.
"베트남은 지금 드라마를 중심으로 하는 한국 연예물과 열애 중입니다." 현지 한류전문가인 당 티우 응언 '영화세계' 기자의 진단이다.

상)최근 방영이 끝난 한국드라마 '겨울연가'의 남자주인공 배용준의 인기가 치솟자 극 중에서 맨 목도리를 구입하려는 팬들도 늘고 있다
하)TV드라마 '올인'에서 여자주인공으로 나온 탤런트 송혜교가 착용했던 시계, 목거리 같은 액서서리도 전국에 유행되고 있다
왜 한류에 열광하나
'경제 중심지' 호치민에서 주택사업을 추진 중인 LG건설은 다음달 초부터 VTV-1을 통해 이미지 광고를 시작할 예정이다.
한국서 폭발적 인기를 끈 사극 '대장금' 이 매주 3차례씩 전국에 방영되는 것에 착안, 이 드라 마의 주인공 겸 전속모델인 탤런트 이영애를 통해 자연스레 인지도를 높인다는 계획이다.
'대장금'은 현지서 방영된 한국드라마 가운데 사극으로서는 사실상 첫 작품인데다 '이영애식 화 장법'의 주인공이 등장하는 작품이기 때문에 광고효과를 극대화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는 게 LG건설 측의 판단이다.
연예물을 통한 것은 아니지만 작년 12월 베트남에서 개최된 제22회 동남아경기대회(SEA Games) 기간 LG전자와 SK텔레콤이 월드컵 당시 전국을 물들였던 '붉은 악마'를 재현한 공동마케팅도 한 류의 인기를 실감케 한 성공사례의 하나로 평가된다.
현지에 진출한 800여개의 한국 업체들은 이구동성으로 한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고 입을 모 은다. 이는 현지에서 가장 큰 인기를 끄는 브랜드가 한류라는 사실을 반증한다.
한류에 관한한 현지에서 최고의 전문가로 평가받고 있는 '영화세계'의 당 티우 응언(ngsel@ho tmail.com) 기자는 베트남인들이 연예물을 중심으로 하는 한류에 열광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문화적 동질감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베트남이 한국과 마찬가지로 유교의 영향을 받은 기본적인 문화적 동질성을 갖고 있기 때 문에 한류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고 지적했다. 또 현대화, 산업화, 도시화를 지향하는 과정에서 잊혀져가고 있는 가족과 이웃에 대한 사랑과 소중함을 한국드라마 등을 통해 재확인할 수 있는 것도 한몫을 차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기존의 홍콩, 프랑스, 러시아 등의 드라마와는 차별적인 가족애 및 우정을 축으로 교육적인 주제를 다양한 모습으로 연출해내는 한국드라마의 내적인 모습을 통해 한국인에 대한 사랑에 빠져 있다고 응언 기자는 풀이했다.
또 29세 이하의 전후세대가 전체인구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베트남 젊은이들 눈에는 현대적 인 이미지의 연기자들과 화려한 배경, 적재적소에 삽입된 음악 등 외형적인 모습도 드라마를 중심으로 하는 한국에 열광하는 또 다른 이유라고 분석했다.
현지 연예계에서 '대부'로 통하는 쩐 빙 국립음악무용원장(tranbinh-boong@hn.vnn.vn)도 유교 권에 바탕을 둔 문화적 동질감 못지않게 찬란하면서도 숱한 외침에 맞서 끈질기게 저항한 역사 적 동질감도 한류가 인기를 끄는 또 다른 동인(動因)이라고 지적했다.
빙 원장은 또 한국 연예인들의 세련된 연기력, 감칠맛 나는 내용의 전개, 화려한 의상과 무대 장치 등도 베트남인들이 한류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요소들이라고 설명했다.
하노이에서 모델 업체를 운영하는 당 황 롱씨도 최근 소속모델 등 젊인이들 사이에 "여보세요 "라는 한국어 인사말로 전화통화를 시작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면서, 이제 한류의 인기는 일상생활에도 깊숙하게 자리 잡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LG전자 베트남 현지법인에서 판매와 마케팅업무를 담당하는 허규찬 과장은 "현지에서 실감하는 한류열풍은 표현이 어려울 정도"라면서 "연예물은 아니지만 한국의 '장학퀴즈'를 모방한 퀴즈 프로그램을 문화마케팅전략의 하나로 후원한 덕택에 회사제품의 인지도 제고는 물론 판매증대 에도 큰 도움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새로운 시장으로 떠오르는 베트남에서는 한류열풍이 대단하다. 사진은 베트남 전통무용인 참을 추고 있는 한 여성 예술가
미래를 진단한다
인도차이나 반도의 맏형격인 베트남은 자체인구 8천만 명과 이웃 캄보디아와 라오스를 포함할 경우 거의 1억에 가까운 소비자들을 거느린 거대시장이다.
특히 베트남의 경우 ▲문화?역사적 동질성을 갖고 있고 ▲인구의 절반가량이 한류에 민감할 수 밖에 없는 29세 이하의 전후세대 소비자들이며 ▲연평균 7% 이상의 경제성장을 유지할 만큼 역 동적인 시장으로 구매력이 높아지고 있는 점 등을 감안할 때 결코 놓쳐서는 안 되는 새로운 시 장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런 현실에서 최고의 브랜드로 떠오른 한류열풍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보다 체계적이고, 장기 적인 전략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특히 드라마 등 연예오락물이 한류 열풍의 구심체 역할을 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할 때 종합적인 점검이 요구된다고 전문가들은 설 명한다.
전문가들의 이런 지적은 드라마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맨 먼저 지적되는 것이 바로 내용의 획일성이다. 웬만한 한국드라마에서는 주인공이나 주인공이 가장 사랑하는 대상이 불치의 병으 로 죽는 것으로 결말이 난다. 그러나 이런 도식적인 전개방식은 식상함과 함께 궁극적으로는 인 기저하를 가져올 우려가 크기 때문에 내용의 다양성이 요구된다는 설명이다.
또 한국 시청자들 사이에서도 이질감을 주는 재벌 등 특정집단 내에서 이뤄지는 자극적인 내용 전개보다는 누구든지 푸근하면서도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 많은 작품이 더 오랜 생명력을 가질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이와 함께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현지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명성황후', '조선왕조 오 백년', '대장금', '다모' 등 시대극(사극) 배급도 늘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일부 특정 연기자들의 겹치기식 출연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드라마의 경우 1세대 한류스 타인 장동건, 김희선, 김남주, 안재욱 등 '4인방'에서 이영애, 배용준, 최지우, 김현주, 소 지섭, 송혜교, 이병헌, 원빈 등으로 확대됐지만 겹치기식으로 출연하는 바람에 신선도가 점차 떨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이들 가운데 일부는 현지실정을 모르는 연예기획사 등의 실수로 현지공연계획 이 취소되거나 현지정서와는 동떨어진 언행 등으로 팬들로부터 오히려 미움을 자초한 경우 도 있다고 밝혔다. 참신하면서도 연기력이 뒷받침되는 새로운 인물의 캐스팅에 노력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좌)LG건설은 VTV-1을 통해 한국서 폭발적 인기를 끈 사극 '대장금'의 주인공 겸 전속모델인 탤런트 이영애를 통해 자연스레 인지도를 높인다는 계획이다
우)최근에 방영돼 폭발적인 인기를 끈 '천국의 계단'에 출연한 탤런트 권상우의 포스터를 구하지 못했다면서 추가 인쇄 여부를 문의하는 전화도 끊이지 않는다
무분별하고 체계적이지 못한 유통경로도 문제다. 현재 베트남에서 방영되는 한국의 인기 드라마나 영화의 경우 대부분이 한국을 직접 통하지 않고 대만이나 홍콩 등 제3국을 통해 우회 수입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한국의 제작사나 판매(배급)사들이 베트남시장의 특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데다 베트남 내 수입업체 역시 한국드라마의 추세를 이해하지 못하는데서 비롯된다.
베트남은 연평균 20편 이상의 한국드라마가 수입되는 거대시장이다. 한국 내 관련업체들의 안일한 태도와 중국 등에서 히트한 드라마를 헐값에만 사들이려는 베트남 현지 업체들의 유통구조가 개선되지 않고서는 악순환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현지정서를 잘 이해하고 드라마 등 한국연예?오락물의 줄거리를 읽을 수 있는 전문적인 유통경로를 수립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또 ▲한국연예기획사들이 인기연예인들의 현지초청공연을 기획하면서 수도 겸 북부지역의 중심지인 하노이를 배제한 채 호치민만 선호하는 차별적인 태도 ▲베트남시장 의 잠재성을 모른 채 현실에만 안주하려는 연예기획사나 연예인들의 소극성 ▲인터넷 등을 통해 한국연예계 동향을 잘 알고 있는 현지 팬들의 '정보수준'을 무시한 채 무명연기인을 인기인으로 둔갑시키려는 시도 등도 문제로 손꼽았다.
응언 기자는 "새로운 연기자, 새로운 내용을 중심으로 하는 다양한 장르의 연예?오락물 소 개, 한국 연기자들과 현지관객들과의 만남, 이를 위한 한국정부와 기업의 장기전략 수립과 지원이 지속적으로 이뤄진다면 베트남에서의 한류열풍은 양국을 잇는 문화적 가교로서 그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선한 하노이 특파원 | shkim@yonhap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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