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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어디로 가고 있나
우리 경제 문제점 해결 못하면 더 추락할 수도

한국 경제의 위기 여부에 대한 논쟁이 좀체 사라지지 않고 있다. 올 연초에는 전국 경제학 교수들이 유례가 없었던 '경제 시국 선언'을 하였는가 하면, 최근에 들어서는 고유가 지속?중국 경제 긴축 정책?미국 금리 인상 전망과 같은 대외 충격이 가해지면서 국내 경제 위기설은 더욱 확산되었다. 이에 대해 정부는 경제 위기론은 경제 개혁을 저지하려는 불순한 의도가 숨겨있는 일종의 음모라는 정치적 논법까지 내세워 경제 위기 의식이 확산되는 것을 차단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럼 우리 경제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한국 경제는 위기에 직면하여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가, 아니면 지극히 정상적인 상황에서 활력을 되찾아 가고 있는 것인가?
이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먼저 경제 위기에 대한 개념부터 명확히 해야 한다. 사실 학교에서 배우는 경제학 교과서에서 경제 위기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다만 일부에서는 자본주의 경제가 성장의 한계에 도달하여 실업이 늘고, 기업이 도산하며, 금융 기관이 파산하게 됨에 따라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 자체가 붕괴하는 것을 자본주의 경제의 위기로 파악하고 있다.
LG화재 인사부 직원들이 40여 명의 신입사원 채용에 3천 명이 넘는 많은 지원자의 서류를 검토하고 있다
또 국제 금융 측면에서는 경상 수지 적자 누적, 외환보유고 감소, 금융 부문 부실 등으로 국가 채무 변제가 어려운 상태에 빠지는 경우를 ‘외환 위기’요 ‘통화 위기’로 정의한다. 이것이 경제 전반의 침체로 이어지는 것을 경제 위기로 파악할 수 있겠다.
멕시코와 같은 중남미 국가 그리고 한국이 외환 위기로 인한 경제 위기를 경험했다. 경제 위기를 이처럼 한 나라의 경제 전체가 파산 위험에 직면하는 것으로 파악한다면, 지금의 한국 경제를 결코 위기라고는 할 수 없다. 큰 폭으로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하고 있고 외환보유고가 크게 늘었을 뿐만 아니라 아직 기업 도산이나 금융 기관 파산이 심각할 정도로 나타나지 않고 있는 까닭이다.
그러나 적지 않은 교수나 전문가들은 국내 경제 상황에 대해 불안한 마음을 저버리지 못하고 있다. 현재의 상황만 놓고 보는 정태적 측면에서는 위기가 아니더라도, 장래의 모습을 그려보는 동태적 차원에서는 우리 경제의 앞날이 매우 위태롭다는 것이다.
최근에 나타나고 있는 경제 문제가 좀처럼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갈수록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 위기감의 배경이다. 결국 경제 위기에 대한 입장 차이는 국내 경제가 직면한 당면 문제에 대한 심각성과 장래 해결 가능성에 대한 인식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럼 현재 우리 경제가 안고 있는 문제점은 무엇이고 앞으로 해결 가능성은 어느 정도 되는 것일까?
우리 경제의 문제점은 당면 문제점과 구조적 문제점으로 파악할 수 있다. 당면 문제점으로는 먼저 실물 부문에서는 소비와 투자 부진 지속, 일자리 축소, 수출 구조 취약, 경기 양극화 심화, 물가 불안감 고조, 금융 부문에서는 단기 부동 자금 증가, 가계 부채 누적, 중소기업 경기 악화 등을 들 수 있다. 우선 우리 경제 내 소비와 투자 부진 양상이 심화되고 있다. 작년에 이어 올해에 들어서도 소비와 투자 수준을 나타내는 소비판매액 지수와 설비투자의 감소세가 이어졌다.
특히 투자의 경우에 외환 위기 이전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조사되어 국내 경제의 성장 잠재력이 크게 위축되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그 결과 국내 일자리가 축소되어 신규 노동력의 고용 흡수 능력이 약화되어 청년 실업자가 갈수록 늘고 있다.
수출은 지난해 말부터 큰 폭의 증가세를 기록하고 있으나 수출 품목 및 대상 지역의 집중화, 수출 채산성 악화, 수출과 내수의 연계 약화와 같은 구조적 문제점을 안고 있어 지속적인 수출 증가를 기대하기 어렵고 국내 경기 활성화에 대한 기여도가 낮은 실정이다.
국내 수출 구조를 보면 반도체?자동차?무선통신기기 등 5대 품목의 수출 비중이 전체의 약 43%를 차지하고 있으며, 지역별로는 대중(對中)수출에 대한 의존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더욱이 전반적인 수출 경기 호조에도 불구하고, 물량 중심의 밀어내기 수출과 국내 소재 및 부품 산업의 미발달로 수출 기업들의 채산성은 오히려 악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수출 증가에 따르는 고용 증대 효과가 90년 10억 원당 46.3명에서 2000년에는 15.7명으로 급속히 축소됨에 따라, 수출이 호조세를 보임에도 불구하고 내수 침체가 더욱 심화되는 경기 양극화 현상을 유발하고 있다.
다시 말해 내외수간 경기 양극화로 중화학공업과 경공업 그리고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등 경제 내 부문간 양극화 현상이 확산되고 있어, 부의 편재 심화와 장기적인 성장 기반의 잠식 우려가 존재한고 있는 것이다.
이에 더해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에 의한 물가 불안으로, 가계의 소비 심리가 위축되어 내수 회복이 더욱 지연될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금융 부문에서의 문제점은 먼저 지속적으로 단기 부동 자금이 증가하고 있는 점을 들 수 있다. 금융기관 수신 및 여신의 단기화 등으로 금융기관 내에서만 회전하는 초단기유동성()이 전체 유동성에서()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1991～1999년 평균 19.4%에서 2004년 2월에는 24.4%로 크게 높아졌다. 자금의 단기 부동화는 우리 경제의 투기성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가계 경제가 악화되고 있는 점도 큰 문제이다. 우리나라 개인 부문의 부채가 2003년 말 현재 482.7조 원으로서 금융자산 대비 48.5%에 육박하였다. 미국의 경우 2003년 말 현재 금융자산 대비 개인 부채는 28.4%로서 우리보다 크게 낮은 상태이다. 특히, 2004년 3월말 현재 신용불량자가 392만 명으로서 경제활동인구의 1/6을 차지하고 있어 가장 심각한 소비 위축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내수 부진이 지속될 경우에 중소기업의 유동성 위기 가능성도 높은 실정이다. 한국은행이 2002년에서 2003년 사이의 기업 재무제표를 분석한 결과 대기업의 경우 ‘현상 유지’, 또는 ‘고위험→저위험군 (群) 진입’ 기업이 많았으나 중소기업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고위험군(群) 진입’ 기업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2004년 4월 말 현재 국민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은 전월의 3.75%에서 3.97%로, 우리은행은 2.8%에서 3.2%로, 외환은행은 2.2%에서 2.5%로 높아져 중소기업의 연체율이 갈수록 상승하는 양상이다.
이와 같은 당면 문제들이 안고 있는 보다 큰 심각성은 우리 경제의 수요 부진, 재정의 한계, 금융 시장의 낙후 등으로 단기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효과적인 대책 마련이 어렵다는 데있다.
더구나 우리 경제에는 구조적 문제점들이 산적해 있어 더욱 더 증장기적인 문제 해결 노력이 요구된다. 우리 경제가 안고 있는 가장 큰 구조적 문제점은 높은 대외의존도이다. 2003년 중 우리나라의 무역의존도는 2002년에 비해 4.1%p 상승한 61.6%로, 주요 선진국의 20% 내외, 중국의 50%보다 높은 수준이다. 게다가 수입유발형 수출 구조로 수출의 부가가치가 낮은 형편이다. 또한 에너지 다소비형 경제 구조로 에너지 충격에 매우 민감하게 작용한다. 서비스업의 경쟁력이 취약한 점도 문제점이다. 경제 내 서비스업 비중과 역할이 증가하는 ‘경제의 서비스화’가 진전되는 상황에서, 국내 서비스업의 경쟁력이 취약하여 경제의 균형 성장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고비용 경제 구조가 성립되고 있다. 이의 한 예가 국내 물류 산업의 미발달로 우리나라 물류 비용이 2002년 현재 기업 매출액 대비 11.1%로 일본의 5.5%, 미국의 9.2%보다 월등히 높은 점이다.
산업 공동화 가능성도 우려된다. 외국인 투자가 저조한 가운데 국내 산업 기반이 중국 등으로 유출되고 있어 산업 공동화 현상이 급격히 전개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여기에 기업 규제가 상대적으로 과다하고 반기업 정서가 강한 점도 우리 경제 문제의 해소를 어렵게 하고 있다.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04 실버취업박람회에서 사람들이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이와 같은 다양한 문제점 속에서 하반기 이후에는 대외 여건도 악화될 조짐이어서 경제 불안감이 가중되고 있다. 고유가, 미국 금리 인상, 중국 쇼크 등이 현실화된다면 대외 의존도가 높은 국내 경제 현실상 수출 둔화와 함께 물가 상승 등으로 내수 부진 양상은 더욱 깊어져서 성장률은 당초 정부 등이 예상한 5%대보다 낮아질 전망이다.
더욱이 눈을 밖으로 돌려 보면 세계 경제 여건이 급변하고 있어 우리 경제의 문제점들을 해소하지 못한다면 한국 경제의 위상은 앞으로 더욱 추락할 가능성이 높은 실정이다.
시장의 세계화가 확산되어 국내외 기업간 M&A와 전략적 제휴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고, 기술 혁신 가속화와 신유망 산업 등장으로 국내 기간 산업의 경쟁력과 부가가치가 낮아지고 있으며, 중국에 이어 인도와 브라질 그리고 러시아와 같은 이른바 BRICs 국가의 등장으로 경제 경쟁이 심화되고 있어 갈수록 세계 시장에서 우리 경제의 설 땅이 좁아지고 있는 것이다.
세계가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상황에서 현재 우리 사회는 정상적인 수준의 갈등을 훨씬 넘어선 ‘갈등 과잉’ 양상을 나타내고 있어 경제 문제 해결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지난해부터 각종 현안에 대한 사회 계층간 갈등이 첨예화되어 왔다. 노사 갈등, 이념 갈등, 세대 갈등 등 한 사회가 치룰 수 있는 거의 모든 갈등이 일거에 분출되는 이른바 ‘갈등 과잉’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 들어서도 성장과 분배, 수도 이전, 미군 철군, 노사 관계 등을 중심으로 계층간, 지역간, 세대간, 정파간 이해 대립 양상이 증폭되고 있다. 급변하는 대외 정세 속에서 우리의 갈 길을 분명히 하고 이에 국민 역량이 집중되어야 하는 데 어디로 갈지 갈피도 잡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결국 우리 사회에 경제 위기감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 이유는 현실 경제의 문제점이 다양하고 그 해결의 필요성이 절박하고 또 해결에 중장기적인 시간과 집중적인 역량 투입이 요구됨에도 불구하고,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뿐만 아니라 이의 해결 방향과 대책이 불명확한 데서 오는 심리적 불안감이라 할 수 있다.
우리 경제에 대한 위기감을 불식하고 새로운 활력을 찾기 위해서는 경제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고 문제 해결의 방향과 대책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우선은 지금의 경제가 지표상으로는 결코 위기가 아니다 할지라도, 이대로 가면 적어도 장기 침체 국면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수요 증대와 복지 증진은 일자리 창출에 있으며 일자리는 결국 기업의 투자에서부터 비롯된다는 사실에 대한 정부와 기업 그리고 노사간 의견 일치에서부터 찾아야 한다.
투자 확대는 일자리 창출과 함께 국내 경제의 성장 잠재력을 확충하고 경쟁력을 향상시키는 기본 바탕이 되는 것이다. 투자를 가로막고 있는 이유 중에는 각종 규제와 같은 제도적인 원인도 크지만, 우리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정상적인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는 기업과 기업가에 대한 부정적 시각도 주요 원인으로 지적된다.
외환 위기 이후 기업 구조 조정과 제도 개혁으로 인해 기업의 경영 행태가 그만큼 개선되었음을 인식하고, 이제는 한국 실정에 맞추어 국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측면에서 국내 기업 활동을 최대한 촉진할 수 있는 유인책을 마련하는 데 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사회단체들은 앞장서야 한다. 더 나아가 우리 경제의 성장 잠재력과 경쟁력을 최대한 확충하고 높이기 위해서는 경제 발전을 위한 국민 통합을 이루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 개혁의 방향과 원칙을 분명히 확립해야 한다. 개혁의 방향은 이념적이고 급진적이기 보다는 국내외 환경 변화에 적응하여 실익을 극대화하는 실용주의적 개혁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선 경제적으로는 시장 원리를 저해하는 요소를 개혁함으로써 시장 경제 시스템을 구축하고, 사회적으로는 법치주의 확립을 통한 사회 질서를 유지해야 하며, 정치적으로는 부정부패 청산 및 깨끗한 정치 실현을 통한 지도층의 도덕성을 확립해야 한다.
특히 세대간, 계층간, 지역간 공유할 수 있는 경제 이념과 가치관을 정립하여 국력의 결집을 이루어야 국내 경제의 성장 잠재력을 보다 내실 있게 확충할 수 있을 것이다.

유 병 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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