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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기업의 체질 바꾸기

공격적 투자, 맞춤형 서비스로 완전무장




도쿄에 위치한 마쓰시타 파나소닉 센터. 이 센터의 '퓨처존'은 2010년 4인 가족의 가정을 구현한 e-타운을 통해 마쓰시타가 그리고 있는 디지털 홈의 모습을 한눈에 보여준다

일본 전자업체들이 본격적인 체질 바꾸기에 나섰다. 과감한 경영혁신, 구조조정, 전략 수정 등으로 단단히 무장하고 나선 것이다. 기존의 소극적, 수동적 전략을 과감히 벗어던지기 위해 필요하다면 경영철학의 근본적인 변화까지도 꾀하고 있다.
이를 통한 1차 공격대상은 다름 아닌 한국.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기업을 제대로 된 경쟁대상으로 여기지 않았던 것과는 180도 달라진 모습이다.
LG경제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일본 기업들이 다시 온다’는 제목의 보고서는 이러한 분석에 신빙성을 높여준다. 조사를 담당했던 김창현 연구원은 “최근 일본의 변화는 사업환경이 어려워지면 사업을 포기하거나 중국으로 생산기지를 옮기던 식의 소극적 전략에 대한 반성에 근거하고 있다”며 “근본적인 경영철학의 변화”라고 표현한다.
원래 일본기업은 한국기업이 들어와 시장 판도를 바꿔 놓으면 다음 세대의 제품으로 전환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세계시장의 흐름을 좌지우지할 유력한 우승후보로서 한국을 생각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따라서 일본의 체질개선으로 가장 어려움을 겪게 될 나라는 한국이 될 수밖에 없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기업의 변화가 가장 잘 감지되는 것은 투자전략 분야. 기존에는 시장의 크기가 확인된 다음 설비 투자에 나서는 보수적 투자 전략이 일반적인 일본기업의 모습이었다.

일본 NEC사가 공개한 세계 최소 트랜지스터. 사진은 이를 전자현미경으로 들여다본 것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크게 달라진 모습이다. LCD 분야에서 2000년대 초까지 1위의 시장점유율을 지켜오던 샤프가 좋은 예다. 샤프는 한국의 LG와 삼성에 글로벌 1위를 내준 후 가장 먼저 6세대 라인의 투자를 단행했다. 6세대란 차세대 주력시장인 TV를 노린 설비 투자. 이를 세계 최초로 가동한 셈이다. 이는 사실 설비와 부품의 상용화 가능성 등 확인되지 않은 사항이 너무나 많은 ‘위험한’ 투자다. 그런 만큼 시장을 확인하고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투자를 통해 시장을 만들어 나가야 하는 부담을 안아야 한다. 1위를 지위를 확보하겠다는 선점 의도가 아니라면 나서기 힘든 대규모 투자인 것이다.
2차 전지 분야에서 시장점유율 30% 이상을 확보하고 있는 산요도 과감한 확장 계획을 밝혀 주목된다. 산요는 2005년까지 시장점유율을 50% 이상 확보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현재 세계시장에서의 판매규모가 월 1억셀 수준인 것을 생각하면 이는 공격적인 투자임이 분명하다. 자칫하면 공급 초과에 의한 시장의 수익성 악화라는 크나큰 위기를 맞이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확실한 1등을 유지하겠다는 의지가 아니면 이 역시 쉽사리 갖기 힘든 목표다.
일본기업의 이러한 변화는 고객의 요구에 대한 유연성에서도 잘 드러난다. 일본은 과거에는 제품과 기술력의 우위를 바탕으로 자신들의 제품개발 주기에 고객이 따라오게 하는 전략을 고수해 왔다. 제품을 공급하는 시기 역시 고객보다는 자신들의 생산계획을 우선하는 것이 관례처럼 돼있었다.
한국기업들은 이런 틈새를 파고들어 맞춤형 전략으로 대응했던 것이 주효한 것이다. 고객의 무리한 요구에도 잔업과 특근을 마다하지 않으며 납기일을 맞추는 등 후발기업으로서 약점을 극복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일본기업들도 맞춤형으로 적극 변신하고 있다. 산요의 경우는 동일 배터리 사이즈 안에서도 고객에 따라 3개 이상의 버전을 공급하는 등 고객밀착 정책을 펼치고 있다. 나아가 세계 1위 휴대폰 업체인 노키아를 위해서는 전용 라인을 갖추는 아낌없는 밀착 서비스를 제공하는 중이다.
일본기업의 이런 변신 노력은 이미 가시적인 성과를 발휘하고 있다. 일본의 9대 전자기업이 작년 회계연도에 모두 흑자를 기록한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이들 기업은 올해 약 32조 원에 달하는 자금을 연구, 개발에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일본 도시바사가 제작한 초소형 하드디스크와 오디오 플레이어
나아가 일본기업은 한국이 절대적 우위에 서있던 반도체 분야에서도 성과를 나타내기 싲가했다. NEC와 히타치가 합작해 서립한 엘피다 메모리. 이 회사는 1/4분기에 처음으로 흑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후지쓰, 도시바, NEC 등도 조 단위에 육박하는 어마어마한 자본을 반도체에 추가할 계획이다.
이래저래 일본기업의 바람이 더욱 거세질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일본기업들의 대대적인 공격에 과연 한국기업들은 어떻게 맞서야 할까?
현재로서는 단기 수익을 극대화하는 데만 열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디지털에서만큼은 일본에 뒤지지 않겠다며 글로벌 표준을 도입하고 세계시장을 선도하는 등 역동적인 모습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이래서는 경쟁력을 확보하고 유지하기가 점점 더 힘들어질 따름이다.
이에 대해 LG경제연구원의 김창현 연구원은 “한국의 위기는 지금까지의 경쟁우위 요소가 더 이상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 뒤 “차별화된 경쟁력 확보를 위해 긴장하지 않으면 2~3년 후 한국 전자산업이 큰 위기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작은 성공에 빠져 자만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때다. 과거 한국기업은 일본기업의 무관심 속에 성장한 측면이 없지 않다. 이제 거꾸로 한국기업의 무관심 속에 일본기업이 선두를 빼앗는 것은 아닌지. 이런 일은 절대 재현되지 말아야 한다.

정리 강윤경 기자 | bookwor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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