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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업 공동화는 한국경제에 심각한 도전
박승 한국은행 총재 '아시아 소사이어터' 강연 중에서


현재 한국은 제조업 공동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한국 기업들은 국내투자를 기피하고 있는 반면 해외 신규투자와 기존 국내시설의 해외이전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의 설비투자는 1.5% 감소했으나 대(對)중국 직접투자는 40%이상 증가했다.
또한 한 연구조사에 의하면 국내 중소기업의 30%, 수출업체의 절반이 해외투자를 계획하거나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은 1만개 이상의 한국기업이 진출해 100만개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국내에서는 청년 실업률이 7%를 넘고 있다.
외국인의 한국에 대한 직접투자도 감소하고 있다. 제조업 부문에서 외국인의 대한(對韓) 직접투 자는 2001년 29억 달러, 2002년 23억 달러, 2003년 17억 달러로 계속 줄어들고 있다.
이처럼 국내기업과 외국기업의 투자 기피로 제조업 공동화가 빠르게 진행됨에 따라 한국에서는 산업의 양극화와 이른 바 ‘고용 없는 성장'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수출위주의 대기업과 첨단기술 산업은 높은 성장세를 보이고 있으나 내수위주의 중소기업과 전통기술 산업은 점차 경쟁력을 잃고 있다.
이와 같이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한 노동집약적 산업의 위축으로 경제가 성장을 해도 일자리는 크게 늘어나지 않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세계 제조업 생산기지의 이동에 따른 결과다.
1960년대 미국에서 일본으로, 1980년대 일본에서 한국을 비롯한 신흥공업국으로 이동하였던 세계 제조업 생산기지가 1990년대 이후 중국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한국의 제조업 공동화 현상이 나타났다.

과거 미국과 일본의 제조업 공동화
세계 제조업 생산기지의 이전 과정, 즉 제조업 공동화 과정은 각기 나름대로의 특징이 있으나 고비용 저효율에 따른 경쟁력 상실이 주요 원인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1960년대 미국의 임금수준은 일본의 4배에 달한 반면 제조업생산성 증가율은 일본의 1/5 수준에 불과했다. 일본 역시 1980년대 들어 임금, 집값, 땅값 등이 계속 상승한 반면 제조업생산성 증가율은 한국의 절반 수준에 머물러 경쟁력을 상실했다.
하지만 미국과 일본의 제조업 공동화 진행 당시에는 생산기지로서의 역할을 이어 받는 국가, 일본과 한국의 경제규모가 이를 이전하는 국가, 미국과 일본의 각각 1/5과 1/15 수준에 불과하여 그 흡인력이 크지 않았다.
또한 전 세계적으로 보호주의 경제 질서가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국산업 보호를 위한 각종 제도적 장치의 동원도 가능했다. 따라서 미국과 일본의 제조업 공동화는 점진적인 형태로 진행될 수 있었고 기업과 정부가 적절히 대처할 수 있는 여유도 있었다.
특히 미국의 경우는 경쟁력이 떨어진 산업이 해외로 생산시설을 직접 이전하기보다는 자국 내에서 합병, 전업, 기업정리 등을 통해 합리적인 조정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공동화라기보다는 탈(脫)제조업화, 산업의 서비스화라는 표현이 적절하다.
일본 역시 경영합리화 노력과 함께 제품의 고급화와 첨단기술화, 산업구조 고도화 등을 동시에 추진했다.
이러한 면에서 미국과 일본의 제조업 공동화는 처음에는 위기로 다가왔으나 결국은 경제체질을 강화하고 경제구조를 고도화하는 기회가 됐다.

한국의 제조업 공동화와 과거 미국 및 일본과의 차이
현재 한국의 제조업 공동화도 세계 제조업 생산기지의 역할이 중국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며 이 역시 한국의 고비용 저효율로 인한 경쟁력 저하에 기인하고 있다.
한국의 고비용 저효율은 1980년대 후반 1인당 국민소득이 중진국 수준에 도달하고 민주화 과정에서 국민들의 억제되었던 욕구가 분출하는 가운데 때마침 부동산과 주식시장에 거품이 발생하면서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선 제조업 임금이 1990년 이후 OECD국가 중 최고수준인 연평균 11%의 상승률을 보여 단숨에 고임금 사회로 진입했다. 현재 한국의 임금수준은 중국의 10배에 달하고 있으며 생활수준이 한국과 비슷하거나 다소 나은 수준에 있는 나라들, 예컨대 싱가포르, 홍콩, 대만 등과 비교하더라도 높은 수준이다.
또한 높은 집값, 땅값, 교육비 뿐 아니라 대립적 노사관계, 집단이기주의 등에 따른 사회적 비용도 매우 높은 상황이다. 반면 1980년대 이후 한국의 제조업 생산성 증가율은 중국의 절반 수준에 불과함 더욱이 한국의 제조업 공동화가 진행되고 있는 경제환경은 과거 미국이나 일본의 경우와 매우 다르다.
첫째, 과거 미국과 일본의 경우와는 달리 한국으로부터 생산기지를 이어받는 중국의 경제규모가 한국보다 커 중국의 흡인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현재 중국경제는 그 규모가 한국보다 두 배 이상 클 뿐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높은 성장률을 보이고 있어 양국간의 경제규모 격차는 계속 확대될 것이다.
'전파.방송 바이어 초청 수출상담회'에서 바이어들이 런닝머신 3차원 마라톤 시물레이션 프로그램 제작업체의 제품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
둘째, 한국과 중국과의 비용격차가 과거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크다는 점이다. 1960년대 미국과 일본의 임금격차와 1980년대 일본과 한국의 임금격차는 각각 4:1이었는데 현재 한국과 중국의 임금격차는 10:1에 달하고 있다. 중국의 물류비용은 한국의 50%에 불과하고 법인세율도 15%로 한국의 27%에 비해 크게 낮다.
셋째, 과거의 보호주의 질서와 달리 오늘날은 전 세계적으로 개방주의 체제가 확산되어 있다. 개방체제하에서는 기업의 자본과 생산시설이 아무런 제약 없이 국경을 넘어 대규모로 이동할 수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일단 제조업 공동화 현상이 시작되면 그 파급속도가 걷잡을 수 없이 빨라질 수밖에 없으며 사회 전반에 미치는 효과가 가히 파괴적이라고 할 만큼 커지게 된다.
섬유, 신발, 가전제품 등은 이미 공동화가 깊숙이 진전되어 제품의 상당부분이 중국 등에서 생산되고 있다.
또한 아직은 공동화 초기단계에 있는 중간기술 부문, 즉 컴퓨터, 통신, 철강, 화학, 기계 산업 등도 진행속도가 대단히 빨라지고 있다.

제조업 공동화에 대한 한국의 대응방향
이처럼 한국에서의 제조업 공동화는 매우 빠르고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는 반면 기업과 정부가 이에 대응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별로 없다는 점에서 한국경제에 심각한 도전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제조업 공동화가 결국 한국경제를 위기로 내몰 것인가, 아니면 과거 미국과 일본의 경우와 같이 새로운 도약의 기회로 전환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전적으로 한국인들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달려 있다.
제조업 공동화의 도전을 극복하고 이를 한국경제의 발전을 촉진하는 기회로 활용하기 위해 한국 국민들과 정부당국은 다음과 같은 노력을 경주해 나갈 것이다.
첫째, 제조업 공동화에 따른 충격을 완화하는 단기적인 돌파구로서 남북경제협력을 계속 강화해 나갈 것이다.
남한기업이 개성공단 뿐 아니라 북한 방방곡곡으로 노동집약적 산업시설을 이전한다면 경쟁력을 상실하고 있는 한국기업, 특히 중소기업에 재활의 기회가 될 수 있다. 북한 개성공단의 경우 임금이 월 57.5달러로 중국보다도 낮으며 땅값이 저렴하고 법인세율도 최고 14% 수준에 불과하다. 따라서 한국기업은 이러한 점들을 잘 활용하여 중국, 베트남보다는 북한으로 생산기지를 이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울러 남북경제협력의 활성화는 향후 통일을 대비한다는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현재 북한의 산업시설은 매우 빈약한데 그나마도 개방체제에 노출될 경우 경쟁력이 없어 모두 폐기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태에서 준비 없이 통일이 이루어져 남북 장벽이 무너질 경우 다수 연구기관들의 추정대로 수백만의 북한 주민이 일시에 남쪽으로 내려올 것이며 이는 커다란 민족적 재앙을 초래할 수도 있을 것이다.
둘째, 제조업 공동화의 근본원인인 사회적 고비용 저효율을 꾸준히 시정해야 한다.
노사관계의 개선과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를 위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고 이를 통해 임금 안정을 도모하여야 한다.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켜 주거비와 임대료를 낮추고, 교육개혁을 통해 높은 사교육비를 줄이고, 생산적 정치를 통해 정치비용을 절감하는 등 사회적 비용부담을 축소해 나갈 것이다.
또한 집단이기주의를 자제함으로써 각종 국책사업 시행과정에서 나타났던 사회적 투자효율의 저하를 최소화해야 한다.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국제환경기술전에서 관람객들이 하수관로 원격 준설로봇을 신기한 표정으로 관람하고 있다.
셋째, 산업구조 고도화와 기업경쟁력 강화를 더욱 촉진해 나갈 것이다.
제조업을 IT 등 부가가치가 높은 첨단기술 부문 중심으로 개편하고 금융, 물류, 문화, 지식산업 등을 육성하여 국내 산업의 탈(脫)제조업화, 서비스화를 촉진할 것이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경제가 발전할수록 제조업 비중은 낮아지고 서비스업 비중은 높아지게 된다. 미국은 1953년, 일본은 1970년, 한국은 1988년에 각각 제조업의 정점을 맞았으며 이후 전체산업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계속 축소되었다.
이러한 산업구조 고도화를 통해 한국은 아직 무수한 저임 노동력을 보유하고 있는 중국과의 경합관계를 벗어나 상호 보완관계를 형성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경쟁력을 상실한 사양산업의 해외이전, 국내에서의 전업이나 합병 등 퇴출이 보다 용이하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
넷째, 경제의 자유화와 개방화를 더욱 촉진할 것이다.
올해 초 한국은 칠레와의 FTA에 어렵게 도달했는데 앞으로 칠레 뿐 아니라 미국, EU, 일본, 중국, ASEAN, 남미 등 모든 나라와 FTA를 맺어 싱가포르에 준하는 수준의 개방체제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또한 싱가포르, 두바이처럼 외국인이 마음 놓고 한국에 와서 사업을 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외국인 투자를 적극 유치하는 한편, 국내기업의 해외투자와 시설이전도 촉진? 지원해 나가야 한다.
아울러 금융과 물류의 자유화를 촉진함으로써 동아시아의 금융허브, 물류허브로 도약해 나갈 것이다.
현재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제조업 공동화는 한국경제의 성숙과정에서 나타나는 필연적인 현상으로 일종의 변성기적인 진통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다만 거대한 이웃 중국경제의 부상과 개방제체에서는 제조업 공동화가 매우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그 파급효과 또한 커다란 파괴력을 가지고 있어 경제주체들의 적응이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면에서 한국의 제조업 공동화는 부분적, 단기적으로 한국경제에 위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전체적, 장기적으로는 한국경제의 새로운 도약 기회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
한국경제가 현재의 환경변화를 성장잠재력 확충의 기회로 삼아 향후 실질 GDP 기준 연 5% 수준의 견실한 성장세를 지속한다면 10년 후에는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의 진입이라는 새로운 한강의 기적도 기대할 수 있다.

정리 주성남 기자 | js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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