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부시 미 대통령이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으로 재지명한 앨런 그린스펀(78) 현 의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미국 경제의 최대 실력자이다.
그린스펀 의장은 제럴드 포드 대통령 시절 대통령 산하 경제자문위원회 의장을 거쳐 1987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 처음으로 FRB 의장에 지명된 이후 지금까지 무려 4명의 대통령으로부터 미국
경제의 수장으로 인정받았다.
현 부시 대통령 취임 이후 경제에 대한 영향력이 예전같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두 차례의
경기침체와 1990년대 말 아시아 금융위기 등 경제적 어려움을 성공적으로 극복하면서 경제대통령이라는
칭호가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정치권과 경제계가 그에게 신뢰를 보내고 있다.
그의 이런 성공에는 경제문제를 정치에 이용하려는 정치권의 요구에 저항하면서 원칙을 고수한
고집스러움이 자리 잡고 있다.
그린스펀 의장은 지난 1992년 대선 전 이라크전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재선이 위태롭던 당시 부시
대통령이 통화량 확대를 요구했으나 이를 단호히 거부했으며 1993년에는 금리를 인하하라는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의 요구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1996년 대선 때는 성장률을 높이기 위해 통화량 확대를 요구한 클린턴 대통령에게 경기가 과열된
상태에서 통화량을 확대할 수 없다고 거부하는 등 정치권력의 논리가 아니라 경제논리로 미국 경제를
이끌어왔다.
또한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참모들이 작성한 보고서에 의존하지 않고 직접 자료를 챙기는
철저함도 오늘의 그를 있게 한 하나의 원인이라는 것이 주변의 대체적인 평가이다.
소신과 고집스러움, 철저함으로 만들어진 그린스펀 의장의 영향력은 `그린스펀 효과'라는 말을
만들어 낼 정도로 확고하다.
지난 1996년 12월 당시 활황세를 보이던 미국 증시상황에 대해 "비이성적인 활황세"라는 그린스펀
의장의 짤막한 논평이 알려지면서 미국 증시의 폭락사태가 발생한 것은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
지금도 독특한 화법으로 표현되는 경제에 대한 그의 견해에 따라 또는 그의 말의 뉘앙스에 따라
세계증시가 출렁이고 있다.
부시 대통령이 그린스펀을 FRB 의장으로 재임명하면서 "그의 경제 적 책무에 크고도 지속적인
신뢰를 갖고 있다"고 말한 것도 이런 그의 영향력에 대한 인정이자 신뢰인 셈이다.
그린스펀은 이번 재지명으로 역대 최장수 FRB 의장이라는 또 하나의 역사를 세울 것으로 보인다.
그의 의장직 임기는 오는 2008년까지이나 FRB 이사 임기가 법률상 14년으로 제한돼 있어
규정상으로는 2006년 1월까지만 의장직을 수행할 수 있다. 그러나 후임 이사가 지명될 때까지
이사직을 유지할 수 있다는 규정을 이용, 대통령이 후임자를 지명하지 않는 방법으로 그린스펀
의장이 4년 임기를 마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지금까지 최장수 FRB 의장은 해리 트루먼 대통령에 의해 임명돼 리처드 닉슨 대통령 시절까지
근 19년 간 재임한 윌리엄 맥체스니 마틴. 그린스펀이 예상대로 새로 4년 임기를 마치면 20년
재임이라는 기록을 세우게 된다.
그린스펀은 1926년 뉴욕에서 출생했으며 뉴욕대 경제학과를 거쳐 콜롬비아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54년 타운젠트 그린스펀사를 설립한 그린스펀은 1968년 닉슨의 경제자문관을
거쳐 1974년부터 1977년까지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 의장직을 수행했으며 1987년 처음으로
FRB 의장에 지명됐다.
그린스펀은 1997년 70세의 나이에 미국 3대 방송국 가운데 하나인 NBC 기자였던 당시 52세의
안드레이야 미첼과 결혼하면서 12년간에 걸친 그의 열애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