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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 그의 힘으로 만들다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자


조중훈(趙重勳) 한진그룹 회장
1945년 11월, 당시 조중훈의 나이 스물 다섯이었다. 그런 그가 트럭한대를 장만하여 인천시 해안동에 ‘한진상사(韓進商事)’라는 간판을 내걸었다. 한민족(韓民族)의 전진(前進)을 의미한다는 한진(韓進) 이라는 상호를 내걸며, 인천을 사업 근거지로 삼았던 것은 중국과의 교역을 겨냥해 무역업을 하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 당시 국내상황은 사회, 경제적으로 혼란의 시대였다. 무엇보다 경제적으로는 남북교역이 중단되면서 원료부족의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조중훈이 그 젊은 나이에 창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동남아와 중국 등을 여행하면서 대륙에 대한 기회를 엿볼 수 있었던 것에서 기인한다. 그는 이미 열 다섯 살 되던 해 진해 해원양성소(海員養成所)를 마치고 젊은 나이에 기관사 자격으로 일본, 중국 등 동남아를 돌면서 다양한 사업 경험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무역업 등록은 계획으로 끝나고 만다. 하루아침에 미군정 하에서의 무역업 허가조건과 규제가 까다롭게 바뀌는 등 여러 불가항력의 이유가 발생한 것이다.
그때 그는 과감하게 무역업에 대한 미련을 포기한다. 그리고 새롭게 생각한 것이 수송이었다. 인천항을 드나드는 화물선을 통해 움직이는 많은 화물들이 소비자의 손에 전달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또 하나의 수송과정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특히 수송은 정치, 경제, 문화, 군사 등 모든 분야에서 중추적인 기능을 맡고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당시에는 남북한 전국을 합해 자동차가 8천대가 못되었고, 수송수단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었다.
해방이후 물가가 뛰어오르자 우선 조중훈은 수송사업자금 마련을 위한 카바이트와 인견사(人絹絲) 유통에 손을 댄다. 강원도 삼척에서 카바이트를 사다 도매상에 넘기고, 그 돈으로 다시 인견사를 구입하여 유통시켰다. 전력이 부족하던 터라 카바이트는 중요한 에너지였고, 방직업이 해방이후 호황이었던 점을 고려해볼 때 그의 사업은 상당한 매력을 갖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박리다매를 2?3년 지속하며 제법 돈을 모으게 된다. 조중훈은 이를 두고 ?지금의 경영 다각화?라고 말하기도 했다. ‘보유차량을 활용하여 회전율을 높이고 만약의 경우에 대비한 위험분산의 효과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 시기를 지나면서 한진상사는 성장을 계속하여 창업 2년만에 10여대의 차량을 보유하게 된다. 이와 함께 1947년 10월에는 경기도 일원에 대한 화물자동차 운송사업 면허를 취득하여 본격적인 수송사업의 기틀을 다지게 된다. 창업 5년만에 종업원 40여 명, 트럭 30대를 보유하여, 말 그대로 수송기업의 모습을 제대로 갖추게 된 것이다.
후에 그는 이 시기의 한진의 성장에 대해 “사업에는 정확한 판단능력과 함께 무엇보다 타이밍이 중요 하다”는 사실을 절감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모든 일에서 방법선택의 중요성을 두고 한 말이다.
이 시기부터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신용과 자금관리였다. 처음에 얻지 못한 신용을 나중에 얻기 힘들다는 것이고, 아무리 좋은 사업이라도 초기에 다 쓸어 붓고 회전이 안되어 뒷심이 없게 되서는 큰 사업을 이루기 힘들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하지만 시련도 컸다. 1900년대 초 설립되었던 대부분의 기업들이 그랬던 것처럼 한진에게서도 전쟁은 모든 것을 앗아갔다. 중소기업의 규모에서 한창 발돋움할 무렵의 한진에게는 참으로 가혹한 것이었다. 차량들과 장비들은 군용으로 징발되어 기업으로서의 모든 자산이 사라지고, 직원들까지 모두 흩어져야 했다. 이때 조중훈은 직원들과 헤어지면서 예금을 모두 찾아 공개 분배한다. 뿐만 아니라 창고 문을 열어 전쟁 중에라도 직원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모두 나누어주었다. 서로 후일을 기약한 것이다.
1953년 봄, 조중훈이 다시 돌아온 인천은 온통 폐허였다. 한진상사 역시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그에게 남아있는 것은 은행부채 뿐이었던 셈이다. 피난 때 이용했던 트럭은 부산에서 이미 처분했던 터였다.
하지만 조중훈은 다시 일어선다. 전쟁 전 쌓아두었던 신용으로 자금을 대출 받아 폐허 위에 가건물을 세우고, 다시 한진상사 간판을 내건다. 그리고 휴전 2년 뒤쯤에는 전쟁이전의 사세를 거의 회복하는 수준에 이르게 된다. 이 무렵, 경인지역에는 한진상사와 비슷한 규모의 운송업체가 50여 개나 난립되면서 업체들간 경쟁이 치열해진다.

한진그룹 서소문 사옥
한진도 치열한 경쟁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이때 조중훈은 기업 생존의 열쇠를 현재의 영역에서 나눠먹기 하는 것을 뛰어넘어 외부에서 찾게된다. 그 때를 기회로 생각하고 인천항으로 반입되어 운반되는 보급물자수송사업으로 눈을 돌린 것이다.
미군 용역사업은 당시로서는 모두가 탐내는 사업이었다. 달러를 벌어들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규모가 엄청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군들의 당시 한국인을 대하는 태도는 수송능력은 고사하고, 전혀 믿지도 않았다. 군수품을 훔쳐내는 사람들한테 수송을 맡기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군수물자 수송을 하겠다는 발상을 했으니 누구도 쉽게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그에게 운 좋게도 미군이 수송하던 캔맥주를 시험적으로 대리 수송할 기회가 주어진다. 그리고 그 기회는 한진과 조중훈에게는 중요한 시작이 된다. 그들과 교류도 깊어졌다. 알게 된 미군이 임기를 마치고 돌아갈 때는 집으로 초대하여 송별연을 베풀기도 했다. 그러한 노력들은 고스란히 신뢰로 이어졌고, 그 교류와 신뢰는 후에 월남에서 절정을 보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1956년 계약금액 7만 달러에 이르는 미 군수품의 첫 수송계약을 체결하기에 이른다. 당시 1인당 국민소득이 100달러도 안되던 시절로 그 계약액은 엄청난 액수였다. 수송도중에 발생하는 일체의 사고에 대해서는 모두 한진상사가 책임지겠다는 조건부 수송이었지만, 그 계약은 한진 성장의 출발이 되었다.
그리고 1963년 외환위기 때, 조중훈에게는 또 한번의 기회가 찾아온다. 당시 정부는 일본으로부터 차입을 위해 일본에 사절을 보내게 되는데 조중훈이 포함된 것이다. 그때 조중훈은 일본으로부터 월남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접하게 되고, 그것은 후에 월남 진출에 큰 영향을 주게 된다.
이후 조중훈이 1965년 9월 월남에 진출하여 1972년 철수할 때까지 6년 간 획득한 총 외화는 1억 5천만 달러규모. 오늘날의 가치로 따진다면 약 10억 달러 이상이 되는 큰 액수다. 물론 이 돈은 조중훈이 전쟁을 함께 겪으면서 생명을 담보로 벌어들인 돈이었다.
그 후 조중훈은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설득으로 대한항공을 인수하면서, 육운(陸運), 해운(海運), 항공(航空)부문을 잇는 종합 수송 전문그룹의 모습을 이룩하게 된다.
조중훈이 있었기에 오늘의 한진이 있다. 그리고 또 하나를 찾으라면 운(運)이다. 조중훈은 그의 자서전에서 ?운을 믿지 않는다?고 했지만 그가 사업을 키워 온 과정을 보면 사업운(事業運)이 없었다고 보기 어려울 만큼 많은 운이 따랐다.
그렇다고 한진이 운으로 커온 기업은 아니다. 운이라는 것도 그곳을 향해 끊임없는 노력을 한 사람에게 다가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조중훈이 그랬다.

임순철 객원기자| top@istory.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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