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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피아트 경영위기
 지난 2년간 CEO 5차례나 갈아치워




피아트의 대규모 구조조정 방침에 반대하며 시위를 벌이는 사람들

이탈리아 최대 기업인 피아트 자동차 그룹이 후계체제를 둘러싼 내홍으로 구조조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때 이탈리아 시장을 석권하고 유럽 및 세계시장에서 상당한 지명도를 갖고 있던 피아트는 독일, 일본, 미국의 자동차 메이저사들에 밀리면서 매출액이 감소하고 수익성이 급감하는 등 경영위기에 봉착하고 있다.
피아트는 10년 전만 해도 이탈리아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그러나 이제는 30%에도 못 미치고 있다. 유럽시장은 7.7%밖에 되지 않는다. 또한 피아트의 취약성이 알려지면서 적대적인 인수?합병 움직임도 나타나 위기감을 더해주고 있다.
이에 따라 피아트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경영혁신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창업과 수성을 주도해온 아그넬리 가문의 오너들이 잇따라 사망하면서 후계체제와 경영권을 둘러싼 갈등으로 발목이 잡혀 있다.
피아트 창업주인 지오바니 아그넬리가 지난 해 1월 암투병 끝에 사망한 이후 그의 동생인 움 베르토 아그넬리가 회장직을 물려받았으나 움베르토 또한 지난 5월 암으로 사망했다.움베르토 회장의 사망으로 100여 년 만에 족벌경영 체제 종식이 기대되던 이탈리아 최대의 민간기업인 피아트 그룹 회장에 아그넬리 가문의 측근 인사가 다시 임명되면서 갈등은 표면화됐다.
피아트 이사회가 지난 5월 30일 움베르토 회장 후임에 피아트의 고급 스포츠카 생산부문인 페라리의 루카 코르데로 몬테제몰로 사장을 선임하자 주세페 모르치오 피아트 사장은 사직서를 제출했다.
지난해 2월 피아트 최고경영자(CEO)로 영입된 모르치오 사장은 취임 후 심각한 피아트 그룹의 재정문제 해결을 위해 움베르토 회장과 함께 강력한 구조조정 작업을 주도해 온 인물. 그는 사직서를 제출한 뒤 성명을 통해 위기탈출 및 수익창출을 위해 자신이 추진해온 구조조정 작업에 계속 참여할 수 없음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
피아트 이사회는 모르치오의 사임으로 공석이 된 피아트 CEO 자리에 세르지오 마르치온네 사외이사를 선임했다. 이탈리아계 캐나다인인 마르치온네 신임사장은 스위스의 상품검사 회사인 SGS의 사장으로 지난해부터 피아트의 사외이사직을 맡아 왔다.
마르치온네가 피아트의 CEO에 새로 선임되면서 피아트는 지난 2년 사이에 CEO를 다섯 명이나 갈아 치우는 기록을 세우게 됐다. 지난 2년간 거쳐 간 피아트 CEO들의 평균 재임기간은 5개월에 불과하고 실제 근무일 수는 100일 정도라고 한다.
피아트의 이 같은 잦은 경영진 교체에 대해 일부 비판자들은 “피아트가 CEO를 바꾸는 속도로 자동차를 판매했더라면 구조조정을 할 필요조차 없었을 것”이라고 비꼬았다.
어려운 시기에 처한 피아트가 이처럼 갈팡질팡하는 것은 가족기업 형태로 피아트를 출범시킨 아그넬리 가문이 경영권에 대한 집착하고 있는 것도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 피아트 그룹의 주식 30%를 여전히 보유하고 있는 아그넬리 가문은 몬테제몰로 회장 임명 이외에 아그넬리 가문의 적손(嫡孫)인 존 필립 엘칸을 부회장에 기용함으로써 확고한 경영권 행사를 위한 족벌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28세에 불과한 엘칸은 지오바니의 손자로 그 동안 착실하게 경영수업을 받아 왔다. 피아트 그룹의 차기 후계자로 유력한 엘칸은 대학을 졸업한 지 4년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광범위한 경험을 쌓았다. 그는 최근까지 미국의 제너럴 일렉트릭(GE)의 회계 파트에서 일해 왔다.
피아트를 지배하고 있는 아그넬리 가문이 그때 그때 위기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경영진을 바꾸고 있는 데 대해 성공 가능성보다는 실패할 확률이 더 높은 것으로 분석가들은 보고 있다. 최근 유럽기업들이 경영실패에 대한 책임을 물어 가차 없이 CEO를 교체했지만 문제를 해결한 경우는 거의 없다.

피아트의 신임 사장으로 선임된 세르지오 마르치온네
마크&스펜서 그룹은 억만장자 필립 그린의 적대적 인수 기도가 있자 CEO 로저 홀름스를 해임했다. 세계 최대의 해충 방역회사인 영국의 렌토킬 이니셜은 이 회사의 올해 첫 4개월 동안의 세전 수익이 6.2% 감소한 것으로 나타나자 클라이브 톰슨 회장을 몰아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이들 회사의 경영이 호전된 기미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지난해 독일 대기업에서 강제적으로 CEO가 물러난 경우는 8.1%나 된다. 이는 1년 사이에 12명의 CEO 중 한 명은 쫓겨난 것을 의미하며, 이 같은 상황에서 장기적인 경영계획을 수립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경영 컨설팅 기업인 부즈 알렌 해밀턴의 조사에 따르면 잦은 경영진 교체가 경영개선에 기여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즈 알렌 해밀턴은 또 회사를 옮긴 CEO는 새로 옮겨간 기업에서 이전 기업에서보다 더 나은 성과를 내지 못한다고 밝혔다.
마르치온네를 CEO로 선임한 데 대해 시장은 일단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6월 첫째 주에 피아트 주가는 상승세를 보였으며 이는 마르치온네의 과거 경영능력에 대한 신뢰가 작용한 때문으로 보인다.
마르치온네는 지난 2002년부터 세계 최대의 상품검사 업체인 SGS의 CEO로 재직하면서 비용은 줄이고 수익은 2배로 늘리는 등 탁월한 경영능력을 발휘했다. 마르치온네는 사장 취임 직후 기자회견에서 모르치오 전 사장의 구조조정 정책을 그대로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모르치오 전 사장이 시작한 구조조정을 자신이 완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모르치오는 비용을 삭감하는 한편 자동차 생산라인을 개선하고 모델을 다양화하는 경영전략을 추진했다. 사실 피아트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인기 있는 차를 만들어 싼 값에 팔아야 한다. 이는 어떤 CEO가 오더라도 마찬가지로 해야 할 일이다.

송병승 국제뉴스국 기자 | songb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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