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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비시 자동차와 윤리경영
 차량 결함 은폐로 문 닫기 일보 직전



뒤늦게 자동차의 결함을 인정하고 사과에 나선 미쓰비시 CEO. 그러나 한번 바닥에 떨어진 신뢰가 다시 회복될지는 미지수다
요즘 일본에서는 ‘윤리경영’이 경영학 개론에나 등장하는 상투어가 아님을 실감케 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
미쓰비시 자동차의 끝 모르는 추락이 그것이다. 일본 4위의 자동차 업체였던 이 회사가 요즘 나락으로 떨어졌다. 소비자의 신뢰가 땅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차량 결함을 은폐하려던 잇단 시도가 만천하에 들통 나면서 경영진은 체포되고 차량판매와 주가는 곤두박질치는 등 회사 간판을 내리기 일보직전에 몰린 것이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지난 2002년 일본의 요코하마 시가지를 달리던 미쓰비시 트럭의 타이어가 갑자기 빠져나가며 보도를 걷고 있던 가족을 덮쳐 모친은 죽고 두 아들이 중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했다.
조사결과 1992년 이후 미쓰비시의 트럭에서 주행중 타이어가 이탈하는 사건이 모두 51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미쓰비시 측은 “사고차량이 볼트를 제대로 조이지 않아서 발생한 사건”이라며 정비 불량을 탓하면서 발뺌했다. 차량 자체는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실은 경영진들이 차체의 결함을 알고 몰래 대책회의를 가졌으며 리콜을 신청하지 않은 채 ‘간이 수리’로 방치해 온 것이 밝혀졌다.
또 2002년 10월 야마구치 현에서 한 남성 트럭운전자가 클러치 결함 탓에 제동불능에 빠져 죽음에 이른 사건이 발각됐다. 경영진들은 클러치의 구조적 결함 역시 알고 있었으나 숨겨온 것을 경찰이 밝혀냈다.
가와소에 가쓰히코 전 미쓰비시 자동차 사장 등 이 회사 경영진 출신 6명이 이 사고와 관련한 과실치사 혐의로 최근 경찰에 체포됐다. 이 회사는 지난 1977년부터 소비자 불만을 이중으로 관리하면서 정부에 보고하지 않는 방법으로 철저히 결함을 은폐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과거에도 차량 60만 대의 리콜 신청을 한 바 있던 미쓰비시 차는 일련의 차량 결함과 이로 인한 사고가 탄로나자 지난 3일 주력차량 16만 대의 리콜을 재신청하고 나섰지만 상황은 이미 되돌리기 힘든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그런가 하면 미쓰비시 차에서 분사한 미쓰비시 푸조 트럭버스의 빌프리트 포트 사장도 최근 기자회견에서 그간 숨겨온 결함이 모두 155건이며 39건, 45만 대의 차량은 리콜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이 같은 상황에서 미쓰비시의 최대 주주인 독일 다임러 크라이슬러사가 지난 4월 자금지원을 끊겠다고 선언했다. 이 회사에서 손을 떼겠다는 것이다. 미쓰비시는 작년 2천100억여 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 경영 정상화를 계획하고 있었으나 자금줄인 다임러 크라이슬러사가 포기하고 나선 것이다.
부랴부랴 미쓰비시는 지난달 그룹과 기관투자가로부터 5천억 엔의 신규자금을 수혈하고 전체 인력의 22%를 삭감한다는 내용의 경영정상화 계획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 같은 발표 뒤 차량 결함 은폐와 리콜 신청 등 악재가 터지자 한 달도 못돼 지난 6월 17일 새로운 경영정상화 계획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일반사원들의 임금 5% 삭감과 임원 보수의 최대 50% 삭감 및 퇴직위로금 보류 등을 통해 향후 2년간 726억 엔의 경비절감을 달성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거듭된 리콜로 소비자 신뢰가 땅에 떨어지면서 지난 5월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56.3%나 줄어들고 향후 이 같은 추세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자 판매 부족액만큼을 경비절감으로 충당하겠다는 계획이다.



미쓰비시의 소형 트럭들. 최근 이 회사는 트레일러 바퀴 이탈로 목숨을 잃는 등 대형사고가 잇따르자 트럭ㆍ버스의 구조결함을 인정하고 리콜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판매대리점들은 하나 둘 미쓰비시 차의 간판을 내리고 있고 일본 내 주력공장인 오카자키 공장은 금요일 휴무를 결정, 주 4일 근무체제에 들어갔다. 해외의 판매대리점들도 미쓰비시 차와 속속 결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대주주인 다임러 크라이슬러는 푸조 트럭?버스의 주식인수 당시 이러한 차량 결함을 알지 못했다며 미쓰비시 차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려는 움직임마저 보이고 있다.
그런가 하면 주가는 지난달부터 하락을 거듭해 지난 6월 16일 주당 189엔으로 마감했다. 시장에서는 이 같은 주가라면 “존재 자체가 의문시된다”는 말들이 공공연하게 나오기 시작한다. 일부 판매대리점들은 무상수리와 할인판매 등의 자구노력에 나섰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미쓰비시 차의 사태는 윤리경영을 외면하는 기업이 처하게 되는 운명을 너무나도 실감나게 보여주어 일본사회에 경종을 울려주고 있다.
일본에서는 최근 빌딩 회전문의 감지기가 작동하지 않는 바람에 한 어린이의 머리가 문틈에 끼어 사망한 사고가 발생, 관련수사가 진행되면서 회전문 제작회사와 빌딩 관리회사의 임직원이 줄줄이 구속되는 사건으로 국민들이 큰 충격에 빠진 일이 있다.
미쓰비시 차의 사태와는 조금 다른 성격이지만 역시 기업 경영자의 안전불감증과 거짓말, 은폐 등이 수면 위로 떠올랐고, 성실하고 솔직하다는 것으로 찬탄 받아온 일본인의 국민성이 현세대 들어 변질된 것이 아닌가 하는 강한 의구심에 사로잡힌 채 자신감을 잃고 있다.
그 같은 상황에서 터져 나온 미쓰비시 차의 사태는 일본인들을 분노케 하기에 충분했고, 이는 부도덕한 기업이 만든 상품을 철저히 외면하는 일종의 보복으로 이어진 것이다. 리콜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오랜 기간 차량의 결함을 쉬쉬해 온 기업 경영자의 도덕적 해이에 일본인들이 치를 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미쓰비시 차가 과연 재기할 수 있을까. 일본 언론들은 이 회사가 계획했던 대로 그룹 등에서 신규자금을 수혈 받는다면 당장은 굴러갈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한번 잃어버린 소비자 신뢰를 찾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주당 189엔이라는 주가는 미쓰비시 차를 바라보는 시장의 냉랭한 반응을 단적으로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미쓰비시차의 재기는 철저한 거듭나기를 통한 윤리경영의 회복 없이는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일본 현지의 분석이다.

신지홍 도쿄 특파원 | sh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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