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초에서 1980년대 중반에 걸친 세계 역사상 유례 없는 고도의 경제성장은 한국의 경제와
사회를 근대화시키는 데에 기여했다. 지난 15년 남짓한 동안 한국의 정치 민주화는 괄목할 만한
것이었다. 폐쇄적이었던 근대 조선왕조는 이제는 역동적인 한국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사실
1997년과 1998년의 잠깐이었지만 견디기 어려웠던 시기만 제외하면 한국의 발전동력이 가까운 장래에 소
멸될 이유는 없는 것처럼 보인다. 정치적ㆍ경제적 전환기에 많은 이들은 한국인의 열정과 근면함이 특히
대외 개방적인 시장경제, 그리고 급속한 정치 민주화와 함께 한국을 곧 부러워할 만한 선진경제의 반열
에 올려놓을 것이라고들 관망하고 있었다. 과연 그럴 것인가? 이 부분에 대해서는 그리 자신만만해 할
일은 아니라고 보며 아무리 자명해 보이는 기본전제들이라도 다시 한번 심사숙고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평등추구의 정부정책
한 가지 우려되는 점은 과연 한국의 민주호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바람직했는가 라는 것
이다. 흔히 경제학자들은 경제논리가 정치와 잘 맞물려 돌아가지 못할 때 이의를 제기한다. 하지만
이 부분을 더 깊이 다루기보다는 한국경제와 정치철학에 얽힌 좀더 복잡 미묘한 사안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나는 한국이 소위 평등주의라는 정치논리의 덫에 걸려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이
나라는 부지불식간에 기본적인 경제원리가 결여된 채로 평등주의라는 주술에 걸려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는 것 같다. 사실 현대 경제학 그 자체가 평등주의로 포장하려는 성향이 있다. 특히 한
국적 민주주의는 더욱더 평등을 지향해 왔고 따라서 정부정책들 역시 더욱더 평등을 추구하는 쪽으로
변해왔다. 이러한 맥락에서 정부정책이 경제활동의 성과를 획일화하려는 것을 우리는 쉽게 볼 수
있다. 민주주의는 이러한 경향을 더 심화시킨다고 할 수 있겠다. 의도는 좋지만 실질적인 내용이
없는 경제정책은 모든 국민들을 그들도 모르는 사이에 궁지로 몰아갈 수 있다.
나는 재앙을 예언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우리 앞에 처함 위험에 대해선 빨리 명시적으로 논의되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30년 이상 한국경제에 대해 고민해온 나의 경험이 옳다면 우리는 이 시점에서 위
급한 현실 상황을 한번쯤 염려해 볼 필요가 있다. 좀더 명확한 설명을 위해 비유를 들면, 경제발전
은 정치경제 체제 속에 수직적 사다리가 안정되게 놓여있을 때만이 비로소 가능하다고 본다. 모든 개
인들이 그 사다리 위 부분에 올라가 있으면 그 사회 전체는 틀림없이 발전할 것이다. 중요한 사실 한
가지는 사람들은 사다리의 위쪽뿐만 아니라 아래쪽에도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사다
리 위쪽에 있는 이들이 사회에 많은 기여를 했으면 더 많은 혜택을 받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
이다. 개인들이 사다리 위에서 자신의 능력과 노력으로 맡은 바 역할을 수행해서 얻은 과실을 거
둘 수 있고 그 사다리 위에서 자신의 위치를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소득의 불균등이 반
드시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셰익스피어 역시 “모든 일이 잘 되고 있으면 그 결과도 좋기 마련
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바로 이러한 내용들이 내가 언급하는 경제성장의 원칙이다.
성장보다 분배 우선은 시기상조
불행히도 모든 이들이 이러한 경제논리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적어도 한국식 민주주의라는 옷을
입고 또 그러한 정치이념에 익숙한 이들이 내는 반대의 목소리를 우리는 들을 수 있다. 평등주의는
점점 더 한국사회에서 부각되고 있으며 가장 우려되는 것은 한 사람이 한 표를 행사하는 민주주의는
당연히 그러한 평등주의에 예속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생각은 평범한 한 개인은 반드시 다른
평균의 사람들과 똑 같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일반 대중으로부터 튀는 사람은 그저
의심과 배척의 대상일 뿐이다. 사실 평등주의는 한국 정서에서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는 성장보
다는 재분배를 우선하는 현재의 시대적 풍조 속에 이미 반영되어 있다. 사실, 한국이 모든 정력을
성장보다는 재분배에만 쏟기는 아직은 시기상조로 보인다.
여기서 잠시 왜 제대로 된 경제적 동기 부여 구조가 유지되어야 되는가에 대해 언급할 필요가 있
다. 어떻게 그러한 동기부여 구조를 평등주의와 관련지어 생각할 수 있는지 살펴보다. 만약 모든
개인이 경제활동의 성과를 똑같이 나누어 가진다면, 그 성과를 이루기 위해 열심히 일했는데 그 성
과가 노력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것을 보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일할 의욕이 생기겠는가? 반
면 일을 안하고도 보상을 받는 사람들이 어떻게 일할 동기를 가질 수 있겠는가 라는 의문도 가지게
된다. 윤리적인 부분들은 차지하고라도 우리는 이러한 간단한 예로부터 그러한 경제체제는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달콤해 보이는 평등논리는 자칫 우리 경제의 예리한 차별화
능력을 무디게 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서둘러 우리가 처한 경제현시리을 직시해야할 것이다.
이 글의 메시지는 간단명료하다. 우리의 장래에 영향을 끼칠 경제성장의 기본원칙들을 간과하지 말
자는 것이다. 정치학적 관점에서 보든 경제학 관점에서 보든 우리가 논의한 성장의 원칙들을 지나쳐서
는 안 될 것이다. 또 한 가지 사실은 시장경제야말로 우리 인류만큼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비록
완벽하진 않지만 우리가 경험한 최상의 경제시스템이며 세계 많은 국가들에게 바람직한 체제로 발전
해왔다는 것이다. 물론 정부는 사회를 위해 필요한 역할들을 수행하는데 그 중 하나는 경제성장의
원칙들이 잘 지켜질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것이다. 시장경제와 달리 민주주의는 그 역사가 200년
남짓 할 뿐이고 아직도 많은 시험을 거쳐야 할 정치 시스템이다.
이 시점의 한국 역사에서 확실한 점은 평등주의적 민주주의는 성장의 사다리를 넘어뜨릴 수 있고 이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 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정치와 경제는 서로 밀접하게 뒤얽혀서 그리 단순하지
않으며 따라서 우리가 진정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하려면 모든 기본적인 전제들을 면밀히 살펴봐야
할 것이다. 우리는 획일적 평등만을 강조하는 정치 체제에서 한 발 물러나 서로 다름을 인정할 줄
아는 체제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할 것이다.
경제의 발전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차별화 과정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리고 이러한 차별화 과정
은 집적과 집중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즉 불균형은 불균형정책으로만 극복될 수 있다. 세상이치(차
별화)에 맞지 않고, 비현실적인 이상(평등사상)에 기초한 개혁은 반드시 실패한다. 실패하는 국민
을 양산하는 평등지향 민주정치가 한국경제 발전의 장애요인이다. 개혁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도와
야 한다. 그러한 개혁은 기회균등의 민주정치와 결과의 차별화를 수용하는 시장경제의 원리를 확
립함으로써 이루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