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증시 - 투자심리 극도로 위축
뉴욕증시 투자자들에게 올 여름은 ‘잔인한 계절’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7월초 2,000 포
인트를 넘어섰던 나스닥 종합지수는 8월 말 1,800 포인트 대로 미끄러져 불과 두 달 사이
10% 안팎의 하락률을 보였다. 같은 기간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와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
&P) 500 지수는 나스닥 지수만큼 낙폭이 크지는 않았지만 중요한 심리적 지지선인 10,000 포인
트와 1,100 포인트를 밑돈 날이 더 많았다.
많은 투자자들의 ‘서머 랠리’ 기대를 저버리고 증시가 맥을 추지 못한 데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면서 배럴당 50달러까지 육박한 국제유가를
들 수 있다.
월가 분석가들은 6월말 뉴욕상업거래소(NYMEX)의 서부 텍사스 중질유(WTI) 선물가격이 배럴당
42.33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뒤 하향 안정세를 보이던 유가가 7월말부터 다시 급등세를
타기 시작했을 때도 대부분 일시적 현상이라면서 의미를 평가절하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8월
들어 거의 매일 유가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할 정도로 초강세를 보이자 주식 투자자들의 관심은
온통 석유시장에 쏠렸고 당연히 투자심리는 극도로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뉴욕증시 약세의 두 번째 이유로는 경기후퇴와 기업실적 향상 둔화 전망이 지적된다. 미국의 경
기확장에 브레이크가 걸리고 있다는 조짐은 여러 경제지표들을 통해 확인됐지만 특히 3만2천 개
증가에 그친 7월 신규고용과 3.0%에 불과한 2/4분기 경제성장률은 많은 투자자들에게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여기에 네트워크 장비업체 시스코 시스템스와 컴퓨터 및 주변기기 업체 휴렛 패커드 등의 미지근
한 사업전망이 기술업종의 향후 성장세에 대한 회의를 불러일으키면서 해당종목 주가의 동반 급
락을 불러 왔다.
8월 12일 연중 최저치로 추락했던 주요지수가 그 다음주 들어 계속되는 유가상승에도 대체적인 강
세를 나타낸 점을 들어 주가가 단기 바닥을 쳤다는 분석이 조심스럽게 제기됐다. 투자업체 스톤리
지 인베스트먼트 파트너스의 스톤 리지 투자책임자는 “아직도 호조를 보이고 있는 경제는 기업수
익과 주가에 도움을 줄 것”이라며 “4/4분기에는 주가가 상승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일각
에서는 나스닥 시장에 첫 선을 보인 인터넷 검색업체 구글의 견조한 주가상승을 기술종목의 잠
재력을 입증하는 사례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그러나 초 고공행진을 계속하는 유가의 거센 파도 앞에서 이런 의견은 쉽게 묻혀 버리고 만다. 대
부분의 증시 투자자와 분석가들은 유가가 현 수준에서 획기적으로 떨어지지 않는 한 주가상승을
기대하기는 매우 어렵다고 전망한다.
웰스 캐피털 매니지먼트의 짐 폴슨 투자책임자는 “연일 사상 최고치를 보이는 유가가 계속 주
식시장에 파괴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올해 세 차례
있었던 주식시장의 랠리는 모두 유가가 정점에 도달했다 하락하면서 찾아왔다”고 지적해 유가
안정이 전제될 경우 주가가 상승세를 탈 가능성이 있음을 밝혔다.
주요 경제지표 - 비관적인 경제전망
8월 들어 발표된 경제지표는 대부분 미국경제의 위축을 나타내는 내용이었다. 무엇보다 실망을 자
아낸 통계는 7월 고용지표였다. 20만 개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됐던 신규고용은 3만2천 개 늘
어나는 데 그쳐 7만8천 개 증가로 수정된 전달에 이어 두 달 연속 일자리 증가 규모가 10만 개를
밑돌았다. 3, 4, 5월 연속 100만 개 가까운 일자리가 늘어나면서 그 동안 경제회복 속에서도 지체
됐던 고용시장의 회복이 본격화됐다는 분석은 두 달 연속 부진한 고용실적이 이어지면서 회의론
으로 일변하고 말았다.
여기에 3/4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역시 전 분기 4.5%는 물론 월가의 일반적인 예상 폭인 3.
6~3.7%보다 낮은 3%에 그쳤고, 7월 소매판매는 0.7%(예상치 1.1%), 7월 산업생산은 0.4%(예상치
0.5%) 증가에 각각 그쳐 모두 예상보다 부진했다.
컨퍼런스 보드의 7월 경기선행지수는 0.3% 하락해 전달에 이어 2개월 연속 하락세를 보임으로써
앞으로 3~6개월 뒤 경기상황도 좋지 않을 것임을 예고했다. 예상보다 높은 106.1로 2002년 6월
이래 최고치를 기록한 컨퍼런스 보드의 7월 소비자 신뢰지수와 7월까지 9개월 연속 경기의 강력
한 확장세를 의미하는 60 이상을 기록한 공급관리연구소(ISM) 제조업지수 등 호조를 보인 지표도
없지 않지만 전반적인 경제의 흐름이 침체 국면에 접어들고 있음을 부인하는 이코노미스트는
많지 않다.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이와 같은 경제의 침체양상이 주로 유가급등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이와 같은 견해는 FRB의 금리정책 결정기구인 연방공개
시장위원회(FOMC)가 성장률과 고용의 둔화 속에서도 0.25% 포인트 금리인상을 강행한 배경이 됐다.
그러나 월가의 이코노미스트들 사이에서는 그린스펀 의장보다는 훨씬 비관적인 경제전망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블룸버그가 8월 들어 54명의 이코노미스트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3/4분기 GDP 성장률
전망치의 중간 값은 3.9%로 전달 조사 때의 4.2%에 비해 0.3% 포인트 낮아졌다. 올해 전체의 성장
률 전망치 역시 4.4%로 전달 조사 때의 4.5%에 비해 0.1% 포인트 떨어졌다. 한국계인 이계무 필라
델피아 연방준비은행 부총재도 개인 견해임을 전제로 “앞으로 몇 년간 미국경제가 3% 이상의 성
장을 달성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경제현안 - 유가급등의 영향과 전망
앞으로의 경제를 어떻게 보는지는 이렇게 극과 극으로 갈리고 있지만 무엇보다 유가의 흐름이 큰
변수라는 데 낙관론자나 비관론자의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손성원 웰스 파고 은행 부총재는 “
유가가 배럴당 60달러를 넘어서게 되면 세계경제가 후퇴하는 가운데 물가는 뛰어오르는 스태그플
레이션이 초래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손 부총재는 그와 같은 가능성이 높지는 않다
면서도 “미국 대선과 이라크 체제 이양 등 주요 사건들이 무사히 넘어가야 유가가 확실히 안정세
를 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 연말 이전 국제유가가 하향 안정화되기는 힘들다는 견해를 나타냈다.
그러나 올해 초까지만 해도 국제유가가 배럴당 30달러 선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배럴당 45~50달
러의 유가 수준이 유지된다 해도 경제에는 치명적인 타격이 될 가능성이 크다. 모건 스탠리의 스
티븐 로치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유가가 이제 확실히 위험수준에 접어들었다”면서 유가가 50달
러에 도달한 뒤 수개월 동안 그 수준을 유지한다면 과거 오일쇼크와 거의 같은 수준의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했다.
런던 월드 마켓 리서치 센터의 사이먼 워델 분석가도 “모두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했을 때보다
더 원유공급이 붕괴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며 국제 원유시장의 분위기를 전했다.
한편으로는 지난 한해 국제유가가 55%나 상승한 데는 합리적인 이유를 찾아보기 어렵고 대부분
거품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어 계기만 마련된다면 일시에 가격이 붕괴양상을 보일 것이라는 분석
도 있다. 베어 스턴스의 프레데릭 뤼퍼 석유시장 분석가는 보고서에서 “우리는 여전히 유가가
급락할 것으로 믿고 있다”면서 “유가가 2005년에는 평균 배럴당 25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
한다”고 밝혔다.
그는 세계 원유 재고량이 무려 3억 배럴에 이르고 있고 실제 공급량도 수요를 충분히 댈 수 있을
정도로 넉넉하다는 점을 이 같은 전망의 근거로 제시했다. 또 일각에서 우려하고 있는 것처럼
특정지역의 테러나 파업 등으로 세계적인 공급차질이 빚어진 사례가 없다는 점도 지적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석유시장 분석가들은 이런 견해에 동조하지 않고 있다. 현재의 유가가 리스크
프리미엄을 상당 부분 반영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 역시 유가의 불가결한 요소가 됐다는
인식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AG 에드워즈 앤드 선즈의 브루스 래니 분석가는 “프리미엄을 제거할
수 있는 완벽한 세상이라면 30달러 대 초반 또는 중반의 유가를 생각할 수 있지만 세상은 완벽하
지 않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