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온 국민이 주식 열풍
주식투자는 최고의 경제 교재
미래의 투자가 교육시키자
“약간 내렸어요. 빨리 파세요.” “얼마가 되면 사는 게 좋나요?”
7월말 도쿄 증권거래소. 2층에 위치한 주식 모의매매 부스의 열기가 뜨겁다. 마치 실제로 주식을
매매하고 있는 분위기가 풍긴다. 여름방학을 맞아 16개 조의 부모와 아이가 모의 주식투자에 열
중해 있다.
이 날은 도쿄 증권거래소가 중학생을 대상으로 부모와 함께 하는 ‘금융체험 버스 투어’를 개최
한 날. 만 하루에 걸쳐 일본은행과 노무라증권의 딜링 룸 등을 돌고 증권거래소로 오는 일정
이다. 작년에 이어 2회째지만 모집 사흘 만에 정원이 다 찰 정도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아이들로부터 주식이 뭐냐는 질문을 받고 대답하지 못 해서 오게 됐어요.” 중학교 1년생 아들
과 함께 참가한 요코하마의 한 주부는 겸연쩍은 웃음을 지으며 참가이유를 설명한다. 나카야마(44)
씨와 아이(13)는 “투자를 학교에서는 가르쳐주지 않아서 왔다”고 말했다. 이 모자는 홍콩에서 왔다.
부모의 대부분이 “주식운용은 흥미가 있지만 좀…”이라며 망설이는 표정들이다. 하지만 아이들
은 거칠 게 없다. 모의매매에서 1등을 차지한 오자와(14) 군은 “게임 같다”고 한 마디로 표현했
다. 스스로 투어를 신청했다는 칸노(14) 군은 “좀더 공부하고 싶다”고 미소를 띠었다.
일본 교육현장에서는 ‘주식과 같은 돈벌이를 가르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아직도
갖고 있다. 하지만 “그거야말로 이상합니다. 주식투자는 경제의 최고 교재”라고 도쿄 증권거래
소의 한 관계자는 반론을 편다. 그는 주식투자에 저항이 없는 세대에게 올바른 지식과 경험의 장을
제공하고 싶다고 말했다.
내각부의 2002년 조사에 따르면 증권투자 경험자는 20대가 5%, 30대가 10%를 웃도는 수준. 니혼게
이자이 신문은 최근 개인주식 붐과 관련, 점차 늘어나는 개인투자가의 층을 두텁게 하기 위해서는
‘미래의 투자가’들을 교육시키는 노력이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주권 수집은 세련된 취미
지난해 도산한 섬유회사 후쿠스케의 주권을 손에 넣고 만면에 미소를 짓는 미야우라(27) 씨. 그는
일본채권신용은행과 전쟁 전 남만주철도회사 등 도산기업의 주권을 중심으로 100종류 이상의 주
권을 소유하고 있다. 이른바 주권 콜렉터인 셈.
특히 도안이 독특하거나 아름다운 것을 선호해서 도산주 이외에도 로고가 인쇄된 스타벅스 재팬
등의 주권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또 인터넷상에서 알게 된 동료와 정보교환을 통해 알음알이로
옥션 주권도 손에 넣었다. 소프트뱅크의 주권은 도급 일을 맡고 기념으로 손에 넣어둔 경우다. 마
니아들은 이런 주식을 ‘은주’(恩株)라고 부르며 애장한다.
그러나 그는 평상시에는 가업인 고구마 밭에서 일한다. 주식투자에 빠져든 계기가 된 사건은 과거
야마이치증권의 도산. 어렸을 때부터 TV에서 이 기업을 자주 접해 왔던 그는 “이런 훌륭한 회사
도 도산하고 말았구나”하며 충격을 받았으며 그 기업들의 운명을 추적하고 싶었다고 한다.
도산된 회사도 100% 감자가 되지 않는 한 주주에게 그 뒤의 사업보고서 등이 정기적으로 도착한다. 도산
주권을 갖고 있으면 세상으로부터 잊혀진 회사들의 뒷날을 더듬어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주권의 전자화로 5년 후로부터 상장기업은 주권의 인쇄를 그만둔다. 주식투자의 선진국인 미국에
서는 주권 콜렉션도 일류의 취미로 인기가 높다. 그는 “주권의 문화는 부분적으로라도 남았으면
한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주권의 전자화란 한 마디로 종이 주권을 없애는 것. 일본의 경우 상장기업은 오는 2009년부터 일
률적으로 주권이 전자상으로만 거래된다. 기업의 입장에서 수천 만~수억 엔의 인쇄비 등 주식발행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자연히 위조 방지책도 마련되게 된다. 분실, 도난의 걱정도 없다. 매매
성립으로부터 3일을 요하는 결제기간의 단축도 가능하다.
주식 공부를 열심히
7월말의 저녁. 도쿄의 번화가인 아오야마 도오리를 따라 늘어선 빌딩의 한 회의실. 주부 5명이 주
식 공부에 열을 올리고 있다. 투자클럽 ‘삼손즈’의 회원들이 모인 월례 주식공부 모임이다.
“핀란드에서는 결혼축하로 주권을 선물하는 사람도 있다고 해요” “휴대전화 대기업인 노키아에
투자하면 어떨까?” 이 클럽의 회원들은 매달 1만 엔씩을 내서 지난 5년간 약 350만 엔을 투자,
170만 엔의 수익을 올렸다. 그 돈으로 이달 말에 핀란드 여행을 가기로 했다.
오페라를 보는 게 최대의 기대라고 한다. 관광도 물론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헬싱키의 증권거래
소를 방문하는 게 가장 가슴 설레는 일이라고 이 클럽의 대표인 야스노(53) 씨는 귀띔한다.
야스노 씨는 처음에는 매매수수료가 뭔지도 몰랐다. 시험 삼아 샀던 소니 주식으로 생각지 않은
손실도 입었다. 그 후 실패를 거울삼아 일과 가사를 병행하는 틈틈이 증권지식을 익혔다. 올해부
터는 주주총회에도 적극적으로 참가했다. 경영자의 얼굴을 볼 수 있는 드문 기회이기
때문이다. “미츠코시 주주총회는 개인투자가의 질문에 성실히 답해 주더라구요.” 그는 소비자이자
노련한 주부로서 기업을 꼼꼼히 관찰하고 있다.
“여유 있는 노후를.” 50~60대를 중심으로 남녀 8명으로 구성된 한 투자클럽도 주식공부에 여념
이 없다. 대표인 모토기(68). 연초에 이 클럽을 결성한 그는 정년퇴직자인 60대 회원들과 함께 차
를 마시며 주식공부에 시간가는 줄 모른다.
현재 50대 중반인 ‘단카이’(團塊) 세대 700만여 명은 앞으로 5년 후 정년퇴직기를 맞게 된다. 노후의
여유와 보람을 기대하는 이들은 자산운용으로 목돈을 마련하기 위해 주식시장을 기웃거리고 있다.
이처럼 일본은 요즘 투자클럽도 붐이다. 몇 명이 모여 돈을 내고 주식공부를 하면서 실제 투자에
뛰어든다.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투자방침과 종목선택을 합의해 결정한다. 클럽은 증권회사에서
구좌를 만들기 전 운영규약을 제출해야 한다. 법률상 회의 의사록과 매매주문 기록도 남겨야 한다.
지난 3월 현재 일본 가계의 주식보유액은 1년 전의 1.5배인 77조 엔에 달하고 있다.